허 민이 누군가. 무려 3800여원에 넥슨에 매각된 게임사 네오플의 전 대표다.
지난 6일 그는 3년 만에 한국의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특유의 뿔테 안경에 길게
자란 머리와 찢어진 청바지, 단추선과 칼라가 비대칭을 이룬 순백의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게임사 사장이 아닌 벤처기업 투자자로 컴백했다. 8일부터 서비스에
들어간 위메이크프라이스((주) 나무인터넷)라는 소셜커머스 기자간담회장. 이날
프레스킷은 엔젤투자자인 그의 스팩을 강조했다. ‘매출 1559억원, 동시접속자수
세계 1위의 게임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를 만든 벤처기업의 신화 네오플 허민
전 대표 벤처기업 투자자로 컴백’.
설립 주요 투자자에 걸맞은 대접이었다. 간담회 주인공도 단연 허민이었다.
회사측에서도 그의 컴백무대가 빅이슈가 되리라는 걸 알아챈 눈치가 역력했다.
이 회사는 네오플의 던파 핵심멤버들이 거의 다 참여했다. 허 대표가 1999년 서울대
첫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을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맥이다.
그 는 회사 설명은 뒤로 한 채 “평생 쓰고 남을 돈을 벌었지만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아
” 혈혈단신 미국행을 택한 이후의 행적을 들려주었다. 10대 학생들과 어학
코스를 받은 뒤 버클리 음대 입학을 했고, 또 보스턴 레드삭스팀의 클럽 야구단에
게스트로서 며칠간 합숙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날도 무려 300개의 너클볼을 던졌다고
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 지만 서울대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장, 네오플 4000억원 매각(2008)과 이듬해 서울
삼성동 800억원대 건물 매입 등 ‘게임 청년재벌’로 뉴스메이커였던 미국행 이전과는
기이하게 단절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왠지 불편했다. 여러 번 되새김질해야 겨우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을 씹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나친 자기 현시욕’
또는 ‘쇼맨십’ 같은 것도 느껴졌다.
사업가적인 기질이 승한 그에게 떠오르는 소셜온라인 쇼핑몰(소셜커머스)은 나쁜 사업
아이템이 아닐 게 틀림없었다. 미국에서 첫선을 보여 불과 2년만에
매출 5억달러를 기록한 그룹폰처럼 한국에도 30여업체가 연 360억원
규모의 시장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 된다”
그의 연기력은 솔직히 빼어난 수준이 아니었다. 어딘지 어색했다.
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솔직한 뭔가가 있었다. 다름 아닌 “열정”이라는
키워드였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 된다”고 확신하는.
그의 열정은 ‘놀랍고도 드라마틱하다’는 점에서 역시 허민스러웠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음악적 재능과 기술도 없고 입학 오디션마저 떨어졌던’,
명문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고 싶어서 입학담당관에게 수십통의 e메일을 쓸 수 있을까.
그의 열정도 대단하지만 그의 노력에 감복한 버클리 음대도 멋있다.
그에게 마침내 입학을 허가했으니.
대학 시절 야구동아리 창단멤버였고, 야구게임 ‘신야구’도 만들었던 그는
(실제로 그의 방안에는 야구란 야구의 모든 자료와 글러브, 방망이들로
꽉 들어차 있어 작은 야구박물관을 무색케 한다고 알려졌다)
“미국에서 늙어서도 던질 수 있는 마구 너클볼을 배우고 싶어 매일 보스턴
구단에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메이저리그 318승의 필 니크로에게
투구법을 전수받았고, 잠깐이지만 보스턴 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현재 서툰 피아노 솜씨지만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 밴드를 이끌며 가수
꿈도 꾸고 있다. 또한 매일 자신의 연습장에서 너클볼을 던지고 있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처럼 편지를 보냈다는 그의 ‘열정’도 멋있지만 그것을 받아준
학교나 구단의 사연도 여간 뭉클한 게 아니다. 그는 “미국이 부러운 건 바로
열정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하, 알겠다. 그는 컴백 제일성(第一聲)으로 열정 바이러스라는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한국에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를 두고 “게임에서 돈 벌어 부동산 재벌로 변신했네”라는 뒷말을 낳았던
테헤란로 800억원대의 미래에셋 건물을 매입에 대해서도 솔직했다.
“머릿돌에 적힌 ‘벤처타워’라는 단어 때문에 샀다”는 것. 그는 앞으로 열정을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게임, 인터넷, 풀빵, 소금, 빈대떡에도 투자하겠다고 했다.
“열정이 있다면 게임에도 투자할 것”
게 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까. “마이클 조던처럼 99% 은퇴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게임제작자를 떠난 건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맛있는
자장면 가게를 옆에 넘겼는데, 다시 자장면 가게를 여는 것은 부당하다”고 응수했다.
그는 지금도 스타크래프트를 친구와 3~4시간씩 즐긴다고 한다. 그는
“열정있는 분이라면 게임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온라인 게임업체 세시소프트에 “회사를 본 것도 아니고 게임은 모르지만
열정을 확인한 후 하루 만에 결정해 투자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제 그의 열정론을 조금만 더 소개해보자. 그는 “잠깨는 기계를 만들 때도,
미팅 게임 ‘캔디바’(2001)와 야구게임 ‘신야구’(2006)를 만들 때도 내가
좋아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던파(2005) 성공까지 18번 실패와 20억의
빚이 있었지만 꼭 될 것이라는 열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예나 제나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된다. 열정을 갖고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야나이 유니클로 사장이 말했던가. “무슨 일이든 가장 큰 패인은 내 안에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는 어쨌거나 ‘하늘이 점지한 자만이 알고 있다’는
성공의 비밀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그런 부류에 속한 것이 확실했다.
플레이 포럼 박명기 기자